남로당 제주4·3투쟁보고서 해설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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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25.10.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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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유사 이래 최대의 참극인 4·3 사건으로 인해 수많은 선량한 도민이 희생되었습니다. 게다가 6·25 전쟁과 남북분단의 여파로 연좌제가 생겨나, 살아남은 이들에게도 깊은 족쇄가 되었습니다.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역사를 냉정히 들여다보면, 4·3의 목적은 남로당이 대한민국 건국을 저지하고 김일성의 노선에 따라 공산 통일을 이루려 했던 폭동이자 반란 이었습니다. 4·3사건이란, 이 폭동·반란을 9년에 걸쳐 평정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양민이 무고하게 희생된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4·3은 민중항쟁이 아닙니다. 이는 남로당이 전개한 공산혁명 통일투쟁이었습니다. 4·3의 주체는 남로당중앙당과 전남도당의 지령을 받은 남로당제주도당이며, 무력투쟁을 주도한 인물은 김달삼(본명 이승진)입니다. 김달삼은 박헌영의 지령에 따라 1948년 7월 20일부터 지하선거를 강행했고, 제주도민 52,350명의 투표지를 가지고 8월 21일부터 황해도 해주에서 열린 남조선인민대표자대회(해주대회)에 참석했습니다. 그가 직접 쓴 ‘제주도 인민유격대 투쟁보고서’(이하 ‘투쟁보고서’)는 해주대회 보고용으로 작성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 자료는 남로당제주도당 인민해방군 최고 주모자가 직접 작성한 1차 사료라는 점에서 가치가 매우 큽니다. 또한 내용이 구체적이어서 4·3 사건의 성격과 전모를 파악하는 데 매우 귀중한 자료입니다. 이 투쟁보고서는 1948년 3월 15일부터 7월 24일까지 132일간 남로당제주도당이 4·3 사건을 일으키게 된 목적과 경위, 조직과 재정비 과정, 작전 및 투쟁 결과는 물론, 국방경비대 제9연대와의 연계 관계, 회담 및 모의 상황, 무기 지원과 탈영병 통계 등의 지원 실적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어 4·3 사건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자료라 할 수 있습니다. 역사는 사실에 근거한 기록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최근 4·3사는 심각하게 왜곡되고 있습니다. 사건의 원인은 배제하고 인명 피해만 강조하며 민중항쟁으로 고착하려는 시도마저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사건을 수습하고 평정하여 대한민국을 건국한 정부와 군경의 공로는 지워지고, 오히려 국가 공권력이 학살의 주범으로 매도되고 있습니다. 4·3 사건의 해결은 진상 규명과 희생자 명예 회복이라는 두 축에서 접근해야 하며, 그 순서 역시 원인 규명이 먼저이고, 이후 발생한 인명 피해는 쌍방에 대해 공평하게 진상을 밝혀야 합니다. 이러한 역사적 과제 앞에서, 이 투쟁보고서를 분석하고 그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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