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어느 미망인의 눈물
관리자
Date : 2024.02.08

어느 미망인의 눈물

 

1988년 서울올림픽 개막식 때 있었던 일화입니다.


비둘기가 날고 성화가 타오른 다음, 애국가가 장엄하게 울려퍼졌을 때 이를 보고있던 서양인 할머니 한 분이 손수건으로 눈에서 눈물을 닦고 있었습니다. 할머니 연세는 당시 70세, 국적은 스페인, 이름은 롤리타 안...


1936년 8월 1일, 나치 치하의 베를린올림픽 개막식이 끝나고 가슴에 일장기를 단 한국선수 김용식, 이규환, 장이진, 손기정, 남승룡 등이 모여 앉아 잠시 잡담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 때 그 자리에 재독동포 한 사람이 헐레벌떡 달려왔습니다. 억센 평안도 사투리로 자신이 지었다는 "조선응원가"를 불러주겠다면서 구깃구깃한 악보 하나를 꺼내 들고 손짓, 발짓, 고갯짓으로 장단을 맞추어가며 그 응원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 조선응원가의 가사는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그런 일이 있은 지 보름 후에, 마라톤에서 손기정 선수가 제1착으로 경기장 안에 뛰어들자 스탠드의 한쪽에서 이  노래가 울려퍼졌습니다.  


서너 명의 재독동포 앞에서 미치광이처럼 두 손을 저으며 지휘하던 이는 바로 보름 전에 조선응원가를 부르던 바로 그 젊은이였습니다. 그 젊은이가 바로 작곡가 "안익태"입니다.  그는 베를린올림픽 두 달 전에 지금 우리가 부르는 "조선 애국가"를 작곡하여 곡을 완성하였고, 올림픽에 조선선수들이 참가한다는 소식을 듣고 응원가로 임시 사용했던 것입니다.


이 애국가를 짓게 된 동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그가 미국 커티스 음악 학교에서 작곡을 공부하고 있었을 때, 샌프란시스코의 한국인 교회를 들른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그 교회에서 개작하여 부른 애국가는 이별할 때 부르는 슬프디 슬픈 스코틀랜드 민요인 "올드랭 사인"의 멜로디였으며 그 곡에 가사를 붙여 당시 애국가로 불렀습니다. 그래서 슬픔을 이겨내고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애국가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한 안익태는 전 세계 40여 개의 국가를 수집하여 비교 검토하였고 5년 만에 완성한 곡이 베를린올림픽 개막식에서 처음 불렀던 바로 그 애국가입니다.


1948년 정부수립과 함께 정식 국가로 채택되었을 때 안익태는 이승만 대통령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습니다. "이 애국가는 제가 지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어주신 곡입니다. 본인은 다만 하나님께서 주신 영감을 곡으로 옮겨적은 것 뿐입니다."


77년 전 나라 없이 일본국 명의로 출전했던 베를린올림픽 개막식에서 처음 불렀던 그 노래를  소천하여 이 세상에 없는 안익태씨의 미망인 롤리타 안 여사가 1988년 서울올림픽 개막식에서 울려퍼진 애국가를 어찌 눈물 없이 들을 수  있었겠습니까?


당시 역대 올림픽 역사상 가장 많은 국가에서 참가하여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던 88서울올림픽 개막식에서 당당하게 연주된 애국가는 우리 민족 모두가 울먹였어야 했던 베를린올림픽 때와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었습니다. 천손민족으로서 근본이 다른 한민족이 새롭게 거듭나서 지구촌 리더로서의  존재감을 만천하에 알리는 자랑스런 애국가로 손색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