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건국전쟁' 김덕영감독의 글
관리자
Date : 2024.02.21

<'건국전쟁' 김덕영감독의 글>

4.10총선에 승리하려거든 <건국전쟁>에 올인하라!


영화 <건국전쟁>이 개봉 10일 만에 180,000명의 관객을 돌파했다. 놀라운 기세다. 2월 10일 현재 좌석판매율만 놓고 보면  37.7%로 1위다. 1000개 극장에 개봉해서 100명이 본 영화와 100개 극장에서 100명이 본 영화가 같을 수 없다. 극장 입장에서 보면 적은 극장 수에도 불구하고 수익이 높은 영화, 즉 가성비 높은 영화란 뜻이다. 어쩌면 <건국전쟁>이 롱런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의미심장한 지표다.


현재 김대중 대통령에 관한 영화가 12만 명대에서 성장을 멈춘 것에 비하면 일단 총선 정국 영화판에서 이승만 영화는 김대중 영화를 이겼다. 영화를 개봉하기 전부터 감독의 소망은 '최소한 이승만의 삶을 다룬 <건국전쟁>이 김대중의 삶을 다룬 영화를 이겼으면 좋겠다'는 목표에 있었다. 그걸 9일 만에 달성한 셈이다.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이 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축하와 격려의 메시지를 보내오고 있다. 개인적으로 모든 분들께 감사한 마음이다. 그들의 목소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이야기들을 종합하면 이번 4.10총선이 보인다.


이미 좌파 진영과 민주당 지지세력들은 총선을 대비하기 위해서 <서울의 봄>을 만들고 개봉했다. 전두광이란 주인공 이름에서 나타나고 있듯이, 영화는 노골적으로 전두환 대통령을 희화한다. 군 내부의 갈등, 쿠데타와 같은 대중에게 부정적인 감성을 자극하는 소재들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군사 반란 세력의 연장선에 현 윤석열 정부를 위치시킨다. 케케묵은 역사 심판 논리를 통해 보수 세력에게 치명타를 입히겠다는 총선 전략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문화계가 좌파로 기울어 있다 보니, 그동안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한 담론은 좌파들이 주도할 수밖에 없었다. 여론의 장악에서 민주당에게 유리한 것은 당연한 이치다. <서울의 봄>이 1300만 관객 동원이라는 경이적인 흥행을 이룩한 이상 4.10 총선 역시 민주당에게 유리할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복병이 하나 나타났다. 그것이 바로 이승만 대통령의 삶을 다룬 영화 <건국전쟁>이다. '이승만'이 지금 나라를 구하고 있다.


"이 영화 하나로 총선판이 뒤집어질 수 있다."


영화 <건국전쟁>을 본 많은 사람들은 말하고 있다


이 영화를 본 한 기자 출신의 작가는 '이 영화는 사실의 놀라운 힘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가 어디에서 왔고, 누구이며, 또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하는 존재인가를 이야기하고 있다며 힘 주어 말했다. 달리 말하면 자유 민주주의의 진정한 가치가 어디에서 출발했는지를 국민들 모두에게 깨닫게 해주고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건 결국 누가 진정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키고 계승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존재인지를 판가름하게 된다는 듯이다.


영화가 끝나면 일어나서 애국가를 부르고 기립박수를 친다. 가슴이 먹먹해지고 슬픔과 분노,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죄송스러운 마음이 복잡하게 교차한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자리에 일어나서 느끼는 감정은 웅장함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대한민국이 이렇게 자랑스럽게 느껴질 때가 없었다', '눈물이 나와 울고 있지만 가슴이 웅대해진다'고 말이다. 그런 힘이 영화를 박스오피스 4위까지 끌어올렸다.


영화 <건국전쟁>을 통해 일어나고 있는 '이승만'의 부활이 놀라운 것은 국민들이 70년 동안 모르고 있던 진실에 눈을 뜨게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과연 누가 애국자이고, 누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설계했는지 그 진짜 주인공의 모습에 눈을 뜨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한민국에서 기념관이 가장 많은 대통령 김대중의 아성에, 대한민국에서 기념관 하나 없는 대통령 이승만이 도전장을 던진 셈이다. 결과는 놀랍게도 '이승만'의 압승이었다.


상징적 가치는 단지 상징에 머물지 않고 인간의 삶과 사회 구조에도 영향을 미친다. 원칙 없는 남북 화해를 강조했던 김대중의 통일 정책은 '북한이 핵무장을 결코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정책적 오판을 낳았다. 국가 지도자가 해서는 안 되는 치명적 오류였다. 덕분에 정확한 규모를 알 수 없는 막대한 정치 자금이 북으로 넘어갔다. 1990년대 후반 아사 직전에 놓였던 북한의 김씨 세습정권이 회생할 수 있도록 만든 결정적 기반이 역설적으로 남한 정권, 즉 남한 국민들의 세금으로 만들어졌다는 뜻이다.


당시 김대중 정부는 이솝우화에 등장하는 이야기를 교묘하게 짜집기해서 두꺼운 외부를 입은 사람의 옷을 벗게 만드는 것은 세찬 바람이 아니라 따듯한 햇살이라고 강조했다. 적을 감화 감동시키는 것은 무력이 아니라 대화와 타협이라며 '햇볕정책'의 국민적 지지를 호소했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 국민들 중에 김대중의 대북 '햇볕정책'이 성공했다고 믿는 사람은 없다. 현재의 북핵 위기가 그때부터 출발했다는 것을 모르는 국민 역시 없다. 그렇다면 김대중은 진정 누구를 위한 대통령이었나?


호남을 편가르고, 호남의 균형적 발전을 방해하기 시작한 것 역시 김대중 정부였다. 김대중의 등장으로 지역 감정이 폭발했다. 호남 차별이란 지역감정을 내세워서 경부고속도로 건설 반대에 최전선에 섰던 것 또한 이젠 잊혀진 과거가 되고 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가 우리 역사 앞에 저지른 가장 심각한 폐해는 역사 인식에서 모든 것을 '피해자 중심'으로 되돌려 놓았다는 점에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4.3사건이다. 4.3사건은 명백하게 5.10총선거를 무력화시키기 위한 1948년 남로당과 북한의 합작품이었다.


"4.3사건을 왜곡시킨 출발은 김대중 정부였다"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이 되는 선거 시스템 자체를 무력으로 방해한 것이었다. 이 사건으로 무려 1천 여명의 선거함을 지키던 공무원, 경찰이 사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대중 정부는 4.3사건의 진실성을 수호하는 대신에 4.3사건을 죽은 사람들에게만 초점을 맞췄다. 그걸 인권이라 부르며 '희생자 중심'으로 4.3을 재조명한다고 대중을 선동했다.


당시 김대중 정부가 4.3사건을 다루면서 처음 꺼냈던 말은 '4.3사건 유가족들의 명예 회복'이었다. 지금처럼 과거 보수 정권을 공격하는 빌미로 4.3사건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죽은 사람들의 명예를 회복시켜주자는 그럴듯한 구호였다. 대다수 국민들이 그 말에 속아 4.3사건이 일어난 본질보다 죽은 사람들에게로 눈을 돌리게 만든 결정적 계기였다.


뒤이어 노무현 정부는 '4.3사건의 정부 보고서'를 좌파적인 시각, 다시 말해서 당시 남로당 세력을 옹호했던 사람들의 증언 위주로 작성했다. '4.3사건 정부 보고서'가 편파적일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렇게 정부가 만든 '4.3사건 보고서'가 공식적으로 학교와 관공서에 배포되면서 4.3사건은 선거를 방해하기 위한 남로당의 투쟁에서 정부가 양민을 이유 없이 집단 학살, 즉 국가적 범죄로 재편집됐다.


여기에 마지막 점을 찍은 것은 문재인 정부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 마지막이었던 2022년 1월, '4.3특별법'을 발효시켜 누구나 4.3피해자로 등록하면 막대한 보상금이 지급할 수 있도록 길을 열었다. 덕분에 남로당에 가입해 무장 투쟁을 일으켜 선거사무소를 공격했던 자들도 지금 4.3사건의 피해자로 당당하게(?) 보상금을 타고 있는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 진실이 밝혀지겠지만, 4.3사건의 출발은 대한민국 건국의 부정이었고 민주주의에 대한 반역이었다. 4.3의 사실과 상식을 뒤집어 놓은 출발점에 '김대중'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놓고 본다면 과연 김대중은 대한민국과 대한민국 국민들을 위해서 어떤 존재였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영화를 보고 눈물이 나서 울고 있지만, 가슴은 웅대해진다!"